금융의 역사 2

청어 뼈 위에 세운 도시, 암스테르담

2026년 10월 24일 · JD

네덜란드에는 "암스테르담은 청어 뼈 위에 세워졌다"는 옛말이 있어요. 은광도 금광도 없고, 땅의 상당 부분이 바다보다 낮은 작은 나라가 17세기 세계 돈의 중심이 됐어요. 그 출발점이 작은 생선 한 마리였다는 뜻이에요. 지난 글에서 은을 가장 많이 가지고도 파산한 스페인을 봤다면, 이번에는 정반대의 나라를 볼 차례예요.

14세기 말청어 손질법 '하링카컨' · 잡자마자 배 위에서 손질하고 소금에 절이기 시작해요.
1579년위트레흐트 동맹 · "누구도 종교 때문에 조사받거나 처벌받지 않는다"는 조항이 들어가요.
1595년플라위트선 등장 · 짐은 많이, 선원은 적게 싣는 '배불뚝이 배'예요.
1602년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 · 누구나 사고팔 수 있는 주식을 발행한 세계 최초의 회사예요.
1609년암스테르담 은행 · 엉망이던 동전을 믿을 수 있는 '은행 돈'으로 바꿔 줘요.

칼 한 자루가 바꾼 생선

청어는 북해에 엄청나게 많았지만 큰 약점이 있었어요. 기름기가 많아서 잡은 지 하루만 지나도 상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예전에는 잡자마자 서둘러 항구로 돌아와야 했고, 멀리 나가 오래 고기를 잡을 수가 없었어요.

14세기 말, 이 문제를 푼 방법이 등장해요. 잡은 청어를 배 위에서 바로 작은 칼로 아가미 쪽을 갈라 아가미와 내장 대부분을 빼내고, 소금과 함께 나무통에 켜켜이 담는 방식이에요. 이것을 '하링카컨(haringkaken)'이라고 불러요. 흥미로운 건 내장을 전부 빼지 않고 소화를 돕는 기관 일부를 남겨 뒀다는 점이에요. 여기서 나온 효소가 생선을 천천히 숙성시켜서 맛도 좋아지고 오래 보관할 수 있었어요.

네덜란드에서는 빌럼 뵈컬스존이라는 어부가 이 방법을 처음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져요. 실제로는 여러 어부가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은 기술로 보는 게 정확해요. 어쨌든 결과는 분명했어요. 배 위에서 손질과 저장을 다 할 수 있게 되자, 어선은 몇 주씩 바다에 머물며 청어 떼를 따라다닐 수 있게 됐어요. 갑판이 곧 공장인 '헤링 버스'라는 어선이 수백 척씩 북해로 나갔고, 소금에 절인 네덜란드 청어는 유럽 전역으로 팔려 나갔어요. 당시 사람들은 청어잡이를 '네덜란드의 금광'이라고 불렀어요.

청어보다 귀한 것, 소금

청어를 절이려면 엄청난 양의 소금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네덜란드에는 쓸 만한 소금이 없었어요. 그 전까지 북유럽의 청어 무역을 쥐고 있던 한자동맹 도시들은 독일 뤼네부르크의 짠 샘물을 끓여 만든 비싼 소금을 썼어요.

네덜란드 상인들은 다른 길을 택했어요. 포르투갈 세투발, 프랑스 대서양 해안처럼 햇볕과 바람으로 바닷물을 말려 만드는 천일염을 배로 대량 실어 왔어요. 천일염은 값이 싼 대신 알갱이가 굵고 불순물이 많았는데, 네덜란드 남부 제일란트에서는 이 소금을 다시 바닷물에 녹여 끓이는 방식으로 깨끗한 소금을 만들어 냈어요. 싼 원료를 들여와 가공해서 비싸게 파는 네덜란드식 장사가 여기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어요.

소금 무역은 정치와도 얽혔어요. 네덜란드는 1568년부터 스페인 왕실에 맞서 독립 전쟁(80년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스페인은 1580년부터 포르투갈 왕위까지 겸하고 있었어요. 스페인이 네덜란드 배의 이베리아 항구 출입을 막자, 네덜란드 상인들은 1599년 무렵부터 대서양을 건너 베네수엘라 아라야 반도의 거대한 소금밭까지 찾아갔어요. 소금 한 가지를 구하려다 대서양 무역로를 익히게 된 셈이에요.

배불뚝이 배, 플라위트

1595년 북부 항구 도시 호른에서 새로운 배가 만들어져요. '플라위트(fluyt)'라고 불린 이 배는 갑판은 좁고 아래쪽 선체는 배불뚝이처럼 불룩했어요. 대포 대신 짐을 최대한 많이 싣도록 설계했고, 도르래 같은 장치를 많이 써서 비슷한 크기의 다른 나라 배보다 훨씬 적은 선원으로 움직일 수 있었어요. 표준화된 설계로 많이 찍어 내서 배를 만드는 값도 쌌어요.

갑판이 좁은 이유로 흔히 세금 이야기가 전해져요. 발트해로 들어가는 길목인 덴마크 외레순 해협에서는 지나가는 배에 통행세를 물렸는데, 배의 크기를 갑판 쪽에서 재던 관행 때문에 갑판은 좁게, 아래는 넓게 만들어 세금을 줄였다는 설명이에요. 다만 이 통행세는 주로 싣고 가는 화물의 가치에 매겨졌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은 세금보다 운임을 낮추려는 설계가 더 큰 이유였다고 봐요.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았어요. 네덜란드 배는 유럽에서 가장 싸게 짐을 실어 나를 수 있었고, 17세기 유럽 바다의 운송을 상당 부분 차지하게 돼요.

이 배들이 가장 많이 다닌 곳은 동인도가 아니라 발트해였어요. 폴란드의 곡물과 북유럽의 목재를 싣고 와서 남쪽으로 되파는 발트해 무역을 네덜란드 사람들은 '어머니 무역'이라고 불렀어요. 청어, 소금, 곡물, 목재처럼 화려하지 않은 물건들이 암스테르담에 돈을 쌓아 갔어요.

종교의 자유가 불러온 사람들

1579년 북부 네덜란드 지방들이 맺은 위트레흐트 동맹에는 종교 때문에 누구도 조사받거나 처벌받지 않는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어요. 당시 유럽에서는 보기 드문 약속이었어요. 그러자 박해를 피해 사람들이 몰려들어요. 스페인이 1585년 안트베르펜을 점령하자 그곳의 개신교 상인과 장인들이 대거 북쪽으로 옮겨 왔고, 그들이 가져온 자본과 거래망은 암스테르담 성장의 큰 밑거름이 됐어요.

1590년대부터는 1492년 스페인과 1497년 포르투갈에서 강제로 개종해야 했던 유대인의 후손들도 종교재판을 피해 암스테르담에 정착하기 시작해요. 이들은 포르투갈어를 쓰는 '세파르디' 유대인 공동체를 이뤘어요. 이베리아반도와 그 식민지, 지중해에 흩어진 친척과 동료의 거래망을 가지고 있었고, 브라질 설탕, 담배, 다이아몬드 거래에서 두각을 나타냈어요. 1688년 이 공동체의 요제프 데 라 베가가 쓴 『혼돈 속의 혼돈』은 암스테르담 주식시장의 거래 모습을 묘사한, 주식시장에 관한 세계 최초의 책으로 꼽혀요.

다만 세파르디 공동체는 암스테르담 인구의 작은 일부였고, 청어잡이나 소금 무역, 조선업 같은 네덜란드의 기간산업을 이끈 것도 아니었어요. 암스테르담의 힘은 어느 한 집단이 아니라, 종교와 출신을 따지지 않고 장사 잘하는 사람을 받아들였다는 것에서 나왔어요. 1492년 스페인과 정확히 반대되는 선택이었어요.

1602년,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

아시아의 후추와 향신료 무역은 큰돈이 됐지만 위험도 컸어요. 배 한 척이 돌아오는 데 2년 가까이 걸렸고, 폭풍이나 해적을 만나면 전부 잃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항해 한 번마다 투자자를 모으고, 배가 돌아오면 이익을 나눈 뒤 회사를 해산했어요. 네덜란드 도시마다 이런 회사가 난립해 서로 값을 올리며 경쟁하자, 1602년 정부가 이들을 하나로 합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를 만들어요.

VOC는 몇 가지 점에서 완전히 새로웠어요. 항해가 끝나도 해산하지 않고 계속 사업을 하는 회사였고, 시민 누구나 돈을 내고 주주가 될 수 있었어요. 암스테르담에서만 1,100명이 넘는 사람이 투자했는데, 상인뿐 아니라 하녀와 장인도 있었어요. 가장 중요한 건 투자한 돈을 돌려받는 방법이었어요. 회사가 돈을 돌려주지 않는 대신, 주식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게 했어요. 이 주식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모이면서 암스테르담 거래소가 생겨났고, 1609년에는 주가 하락에 돈을 거는 공매도까지 등장해요.

VOC는 아시아에서 전쟁을 하고 조약을 맺을 권한까지 가진 거대한 조직이었고, 그 과정에서 반다 제도 학살 같은 어두운 역사도 남겼어요. 무역의 성공 뒤에 무력과 독점이 있었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야 해요.

1609년, 믿을 수 있는 돈을 만든 은행

VOC를 흔히 '중앙은행 같은 회사'로 소개하기도 하지만, VOC는 무역 회사였어요. 오늘날 중앙은행의 조상으로 꼽히는 곳은 1609년에 세워진 암스테르담 은행(비셀방크)이에요.

당시 암스테르담에는 유럽 곳곳에서 온 수백 종류의 동전이 돌아다녔어요. 가장자리를 몰래 깎아 내거나 질 나쁜 금속을 섞은 동전도 많아서, 거래할 때마다 동전의 진짜 가치를 따지느라 다툼이 끊이지 않았어요. 시 정부가 세운 암스테르담 은행은 상인들이 맡긴 동전의 실제 금·은 함량을 따져 그만큼을 장부에 '은행 돈'으로 적어 줬어요. 큰 거래는 동전을 주고받는 대신 장부의 숫자를 옮기는 것으로 끝냈어요. 이 은행 돈은 오히려 동전보다 더 높은 값에 거래될 만큼 믿음을 얻었어요.

청어로 시작해 소금, 배, 곡물, 향신료로 이어진 무역이 돈을 모았고, 주식과 거래소와 은행이 그 돈을 굴렸어요. 은을 실어 오기만 했던 스페인과 달리, 네덜란드는 돈이 머물고 불어나는 구조를 만든 거예요.

그리고 바다 건너 영국으로

1688년, 네덜란드 총독 빌럼 3세가 군대를 이끌고 영국으로 건너가 왕위에 올라요. 명예혁명이에요. 그는 네덜란드식 재정 운영과 금융가들을 함께 데려왔어요. 그리고 6년 뒤, 프랑스와의 전쟁 자금이 급했던 이 네덜란드 출신 왕 아래에서 잉글랜드은행이 태어나요. 다음 이야기는 거기서 이어집니다.

더 읽을거리

  • Jan de Vries & Ad van der Woude, The First Modern Economy: Success, Failure, and Perseverance of the Dutch Economy, 1500–1815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7)
  • Jonathan Israel, The Dutch Republic: Its Rise, Greatness, and Fall 1477–1806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 Mark Kurlansky, Salt: A World History (2002)
  • Lodewijk Petram, The World's First Stock Exchange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4)
  • Joseph de la Vega, Confusión de Confusiones (1688)

이 글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설명이며, 전설이나 학자 사이에 해석이 갈리는 부분은 그렇다고 밝혀 적었어요. 투자 권유나 조언이 아닙니다. 사실과 다른 부분을 발견하시면 [email protected]으로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