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쓰는 돈은 대부분 누군가의 빚이에요. 은행이 대출을 해 주면 그만큼 예금이 생기고, 중앙은행은 국채를 사들이며 돈을 풀어요. 이 "빚이 곧 돈이 되는" 구조가 처음으로 제도가 된 곳이 1694년 런던의 잉글랜드은행이에요.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네덜란드에서 건너온 왕과, 그 왕의 원정 자금을 댄 유대인 금융가가 있었어요.
| 1656년 | 유대인 재입국 허용 · 1290년 추방 이후 360여 년 만에 크롬웰이 문을 열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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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72년 | 국고 지급 정지 · 찰스 2세가 빚을 갚지 않아 런던 금세공 은행가들이 무너져요. |
| 1688년 | 명예혁명 · 네덜란드의 빌럼 3세가 영국으로 건너가 왕이 돼요. |
| 1694년 | 잉글랜드은행 설립 · 120만 파운드를 연 8%에 정부에 빌려주고, 원금은 돌려받지 않아요. |
| 1844년 | 은행법 · 잉글랜드·웨일스의 지폐 발행권이 잉글랜드은행으로 모이기 시작해요. |
믿을 수 없는 왕의 빚
17세기 영국은 네덜란드에 비하면 금융 후진국이었어요. 가장 큰 문제는 왕의 신용이었어요. 왕은 돈이 필요하면 런던의 금세공업자들에게 빌렸는데, 1672년 찰스 2세는 아예 "국고 지급 정지"를 선언하고 빚 상환을 멈춰 버렸어요. 왕에게 돈을 빌려준 금세공 은행가들이 줄줄이 파산했고, 이후 누구도 영국 왕에게 선뜻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았어요.
같은 시기 네덜란드 정부는 연 3~4% 수준의 낮은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었어요. 빚을 꼬박꼬박 갚는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영국이 네덜란드를 따라잡으려면 먼저 이 믿음의 차이를 메워야 했어요.
1656년, 유대인이 다시 런던으로
영국은 1290년 에드워드 1세가 유대인을 추방한 뒤 360년 넘게 유대인의 거주를 허락하지 않았어요. 1655년 암스테르담의 랍비 므낫세 벤 이스라엘이 런던으로 건너가 올리버 크롬웰에게 유대인의 재입국을 청원했고, 이듬해 크롬웰은 공식 법령 없이 사실상 거주를 허용했어요. 암스테르담의 세파르디 상인들이 런던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예요.
크롬웰의 계산에는 경제가 있었다는 해석이 많아요. 당시 세계 무역의 중심이던 암스테르담의 상인 네트워크를 런던으로 끌어오고 싶었다는 거예요. 홍익희 교수도 강연에서 이 대목을 영국이 네덜란드의 무역·금융 노하우를 받아들이는 출발점으로 설명해요.
1688년, 원정 자금을 댄 유대인 금융가
1688년, 영국 의회 세력은 가톨릭 국왕 제임스 2세를 몰아내기 위해 네덜란드 총독 빌럼 3세(영국식 이름 윌리엄 3세)를 불러들여요. 빌럼 3세의 아내 메리는 제임스 2세의 딸이었어요. 빌럼은 500척 가까운 배와 2만 명 안팎의 병력을 이끌고 바다를 건넜고, 제임스 2세는 싸우지도 못하고 프랑스로 달아났어요. 피를 거의 흘리지 않았다고 해서 '명예혁명'이라고 불러요.
이 엄청난 원정에는 큰돈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돈의 상당 부분을 댄 사람 중 한 명이 헤이그의 세파르디 유대인 금융가 프란시스코 로페스 수아소예요. 그는 빌럼에게 200만 길더를 이자 없이 빌려줬다고 기록돼 있어요. "성공하면 갚으시고, 실패하면 제가 잃은 것으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도 전해져요. 원정군의 군량과 물자를 조달한 군수업자 안토니오 알바레스 마샤두와 야코브 페레이라도 세파르디 유대인이었어요.
빌럼 3세가 영국 왕이 된 뒤에도 이 관계는 이어졌어요. 유대인 금융가 솔로몬 데 메디나는 빌럼의 대륙 전쟁에 필요한 군수 자금을 맡았고, 1700년 영국에서 유대인으로는 처음으로 기사 작위를 받았어요. 홍익희 교수가 강조하듯, 네덜란드의 금융가들이 왕을 따라 런던으로 옮겨 오면서 암스테르담의 금융 기술이 통째로 영국에 이식되기 시작한 거예요. 이 이주에는 유대인 금융가뿐 아니라 네덜란드 개신교 상인들과 프랑스에서 박해를 피해 온 위그노 금융가들도 함께했어요.
전쟁은 돈을 삼키고
왕이 된 빌럼 3세는 곧바로 프랑스 루이 14세와 9년 전쟁에 들어가요. 1690년 비치헤드 해전에서 영국·네덜란드 연합 함대가 프랑스에 크게 지자, 영국은 함대를 새로 만들어야 했어요. 그런데 왕의 신용은 여전히 바닥이었어요. 정부는 복권을 붙인 대출까지 내놓으며 돈을 모았지만 턱없이 모자랐어요.
이때 스코틀랜드 출신 사업가 윌리엄 패터슨이 아이디어를 내요. 투자자들이 돈을 모아 은행을 세우고, 그 돈을 몽땅 정부에 빌려주자는 거예요. 대신 정부는 특정 세금(선박 톤수세 등)으로 이자를 꼬박꼬박 내고, 은행은 그 대출을 바탕으로 지폐를 발행하고 다른 은행 업무를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조건이었어요.
1694년, 원금은 갚지 않아도 됩니다
조건은 이랬어요. 은행은 정부에 120만 파운드를 연 8%에 빌려주고, 관리비로 해마다 4,000파운드를 더 받아요. 정부는 해마다 약 10만 파운드의 이자만 내면 되고, 원금은 갚지 않아도 됐어요. 은행 입장에서는 왕이 원금을 떼어먹을 걱정 없이 의회가 보증하는 세금에서 안정적인 이자를 받는 거래였고, 정부 입장에서는 갚을 날짜에 쫓기지 않는 돈을 얻은 거예요.
120만 파운드는 12일 만에 모였어요. 투자자는 1,200여 명으로, 윌리엄과 메리 국왕 부부도 1만 파운드를 냈어요. 대부분은 런던의 상인들이었고 초대 총재 존 훌런은 위그노 가문 출신이었어요. 투자자 명단에는 유대인 이름도 있었지만 소수였어요. 은행의 설립 자금 자체는 런던 상인 사회 전체가 낸 돈이었고, 유대인 금융가들의 결정적인 역할은 그보다 앞선 1688년 원정 자금과, 이후 성장하는 국채 시장에서 나타났어요.
홍익희 교수의 설명과 기록
홍익희 교수는 강연에서 이 거래를 유대 금융가들의 제안으로 설명해요. "원금은 갚지 마시고 이자만 주십시오. 대신 그 대출을 담보로 돈을 찍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는 구조를 만든 게 네덜란드에서 건너온 유대 금융가들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이 구조, 즉 정부의 빚을 담보로 민간 주식회사 형태의 은행이 돈을 찍어 내는 시스템이 이후 미국 연준으로 이어진다고 봐요.
구조에 대한 설명은 정확해요. 잉글랜드은행은 실제로 정부에 빌려준 돈을 바탕으로 지폐를 발행했고, 이것이 '국가의 빚이 돈이 되는' 근대 화폐 제도의 시작이에요. 다만 제안자와 투자자에 대해서는 기록이 조금 달라요. 은행 설립안을 낸 사람은 스코틀랜드인 패터슨이었고, 설립 자금은 주로 런던의 개신교 상인들이 냈어요. 그래서 이 글에서는 유대인 금융가들의 역할을 1688년 원정 자금과 네덜란드 금융 기술의 이전에 초점을 맞춰 정리했어요. 두 설명 모두 "네덜란드의 금융이 영국으로 건너와 잉글랜드은행이 됐다"는 큰 흐름에서는 같아요.
빚이 돈이 되는 원리
잉글랜드은행이 만든 구조를 단순하게 그려 보면 이래요.
- 투자자들이 은행에 금화 120만 파운드를 맡겨요.
- 은행은 그 돈을 정부에 빌려주고, 정부는 그 돈으로 전쟁을 치러요.
- 은행은 정부에게서 받을 '빚'을 담보로 지폐(은행권)를 발행해 상인들에게 빌려줘요.
- 결과적으로 같은 120만 파운드가 정부의 전쟁 자금으로도, 시중의 지폐로도 쓰여요.
돈이 '금'에서 '믿음'으로 옮겨 가는 순간이에요. 지폐의 가치를 받쳐 주는 건 금고 속 금이 아니라, 의회가 세금으로 이자를 계속 낼 것이라는 믿음이었어요. 이 믿음 덕분에 영국은 18세기 내내 프랑스보다 훨씬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 전쟁을 치렀고, 결국 프랑스를 누르고 세계 패권을 잡아요. 반대로 빚을 감당하지 못한 프랑스 왕실은 1789년 대혁명으로 무너지죠.
국채 시장을 키운 사람들
잉글랜드은행 이후 영국 정부의 빚은 사고팔 수 있는 국채가 됐고, 이 국채 시장에서 유대인 금융가들은 큰 역할을 해요. 대표적인 인물이 샘슨 기디언이에요. 그는 1740~50년대 영국 정부의 대규모 국채 발행을 맡아 투자자를 모았고, 1745년 스튜어트 왕가 지지 세력이 반란을 일으켜 런던 금융가가 공포에 빠졌을 때 앞장서 정부 채권을 사들이며 신용을 지켰어요. 그리고 19세기, 이 국채 시장의 주인공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온 한 가문으로 넘어가요. 로스차일드예요.
잉글랜드은행이 지폐 발행권을 독점하게 된 건 처음부터가 아니었어요. 18~19세기 영국에는 지폐를 내는 지방 은행이 수백 곳 있었고, 1844년 은행법으로 새 은행의 발행이 막히면서 점차 잉글랜드은행으로 모였어요. 잉글랜드은행이 국유화돼 정부 소유가 된 건 1946년이에요.
그리고 바다 건너 미국으로
정부의 빚을 담보로, 주식회사 형태의 은행이 돈을 발행한다. 이 구조는 200여 년 뒤 대서양을 건너 1913년 미국 연방준비제도로 다시 태어나요. 다음 이야기는 그 사이를 잇는 가문, 로스차일드에서 시작합니다.
더 읽을거리
- 홍익희, 「미국 연준 탄생 비화」 강연 (C&M Speakers, YouTube) · 『유대인 이야기』
- David Kynaston, Till Time's Last Sand: A History of the Bank of England 1694–2013 (Bloomsbury, 2017)
- P. G. M. Dickson, The Financial Revolution in England: A Study in the Development of Public Credit, 1688–1756 (1967)
- Douglass North & Barry Weingast, "Constitutions and Commitment" (Journal of Economic History, 1989)
- Jonathan Israel, The Anglo-Dutch Moment: Essays on the Glorious Revolu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1)